이강인에게 쏟아지는 비난,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컨텐츠 정보
- 155 조회
만인의 사랑을 받던 '축구 아이돌'이 하루 아침에 '국민 빌런'으로 전락했다. 축구 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이강인의 행보에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 이강인은 지난 '2023 카타르 AFC 아시안컵'에서 벌어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선수단 내분 사태의 핵심인물으로 거론되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더 선>은 이강인이 대회 기간 중 주장 손흥민과 충돌해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준결승 경기 전날 이강인을 비롯한 몇몇 젊은 선수들이 식사를 일찍 마치고 탁구를 쳤다. 손흥민과 고참 선수들로부터 팀의 단합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한 지적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격해지며 물리적 충돌로 번졌다고 한다. 그 여파로 손흥민은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까지 당했다.
두 선수는 다음날 요르단전에서 나란히 선발 출장했지만, 부진했고 호흡도 잘 맞지 않았다. 대표팀은 요르단에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는 졸전을 펼친 끝에 0-2로 완패하며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귀국 직후 언론을 통해, 선수단 내분 사태가 폭로되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탁구 게이트', '이강인 게이트'라고 불릴 만큼 후폭풍이 상당하다. 사령탑이었던 클린스만은 아시안컵의 성적 부진에 이어 선수단 관리에도 실패한 책임을 물어 결국 지난 16일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서 경질 당했다.
하지만 선수단 내분 사태의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당사자로 지목된 몇몇 선수들 중에서도 '하극상과 항명' 의혹에 휘말린 이강인에게 초점이 맞춰지며 비판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황이다.
이강인은 내분 사태가 폭로된지 하루 만인 지난 14일 SNS에 "팬들에게 큰 실망을 끼쳐드려서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사실상 내분 사태가 정말로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하루 뒤인 15일에는 법률 대리인을 통하여 손흥민을 향해 주먹질을 했다는 등 몇몇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적극 부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팬들의 여론은 싸늘하다. 이강인이 SNS에 올린 사과문도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되는 스토리 기능에 올린 것을 두고 진정성이 없다는 의심을 받아야했다. 선수단 내분 사태가 알려진 이후, 이강인의 SNS에는 지금까지 수만 개가 넘는 악플이 쏟아졌다. "국가대표에서 퇴출하라", "축구 보다 인성이 먼저"같은 질타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악플은 이강인의 누나 등 가족들에게도 향했다. 이강인과 광고계약을 맺었던 회사들은 누리꾼들이 불매운동을 주장하며 자칫 피해를 입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강인의 소속팀 경기를 중계하던 쿠팡플레이는 이강인의 출전 소식을 알리는 자막조차 표시하지 않을 만큼, 곳곳에서 벌써부터 '이강인과 거리두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아무리 공을 잘 차도 싸가지(싹수) 없는 애들은 대표팀에서 제외했으면 한다"며 실명은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강인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강인이라는 이름에 환호하고 열광하던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이강인은 유년 시절 축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고, 10세 때 스페인으로 축구 유학을 떠나 발렌시아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에 성공하며 세계적인 유망주로 부상했다.
2019년 U-20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이강인은 한국선수로서는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골든볼(최우수선수)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스페인 마요르카를 거쳐 세계적인 빅클럽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PSG)에 입단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첫 출전하여 축구대표팀의 원정 16강 진출에 기여했고, 최근 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리며, 어느덧 명실상부한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강인은 일찌감치 한국 축구에서는 보기 힘든 재능과 기술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으며 남다른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손흥민의 계보를 잇는 축구대표팀의 차세대 에이스로 전망할 만큼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랬던 이강인이기에 이번 대표팀 내분 사태를 두고 팬들이 받은 충격과 실망감은 더 컸다. 하극상이나 항명같은 단어들도 결코 용납되기 어려운데, 심지어 그 대상이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자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인 손흥민이라는 사실은,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이 말을 아끼고 있기에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하여 클린스만, 손흥민 등 관련자들 대다수가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목격하거나 인정한 상황이다. 중요한 대회 기간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선수단의 분열을 초래한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특히 선후배 관계가 철저한 한국축구계와 대표팀에서는 초유의 사태였기에, 이강인이 비판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처럼 특정선수를 겨냥하여 감정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체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 원인과 과정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차분하게 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일단 축구협회가 나서서 먼저 전후 사정의 '진실'부터 정확하게 규명하는게 우선이다. 정몽규 회장은 16일 클린스만 경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나섰을때 선수단 내분 사태를 언급했지만 이 문제로 당장 선수들을 조사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조만간 태국과의 북중미월드컵 2차예선 경기를 앞두고 다시 대표팀을 소집해야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않았다. 만일 손흥민과 이강인을 변함없이 대표팀에 차출한다면 사건을 이대로 덮고 가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는 앞으로 선수단내 갈등이 하극상이 발생해도 묵인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현재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선수단을 중재하고 분위기를 추스러야할 감독도 부재한 상황이다.
축구협회는 어떤 논란이 될만한 이슈나 현안에 직면했을때의 방침에 대하여 공식적인 '원칙과 기준'을 제시해야할 의무가 있다. 감독이나 코칭스태프가 그동안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못해서 팀 기강이 무너진 것이 이번 '탁구 게이트'의 본질이라고 할수 있다.
선수들은 이번 사건으로 이미 큰 상처를 받았는데 축구협회가 입장정리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않는다면 선수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된다. 선수들을 보호해주지도 않고 방관하는 협회를 지켜보면서 과연 어떤 선수들이 대표팀에 기꺼이 헌신하고 싶어할까.
만일 선수단 내분 사태에서 언론에 보도된대로 하극상이나 물리적 충돌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공식적인 처벌은 불가피하다. 징계의 내용은, 작게는 경고에서부터 대표팀 출전정지, 가장 엄중한 경우는 퇴출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사건에 연루된 이강인과 손흥민은 경중에 따라 동시에 징계를 받는 상황도 가능하다.
그동안 대표팀에 이와 비슷한 사례가 거의 없었기에 어느 정도의 처분이 내려질지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굳이 꼽자면 2013년 기성용이 당시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SNS에서 수차례 뒷담화를 했던 하극상 사건이 있었다.
당시 기성용도 여론상으로는 대표팀 퇴출까지 거론될만큼 분위기가 심각했지만 결국 축구협회는 '무징계 엄중경고'라는 어정쩡한 솜방망이 조치로 마감한바 있다. 당사자인 최강희 감독이 크게 문제삼지 않은데다, 마침 대표팀 사령탑도 기성용에 우호적인 홍명보 감독으로 교체되던 시기라 이래저래 운이 좋았다. 또한 적어도 기성용은 선후배 선수들간의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훗날 주장까지 역임할만큼 선수단주류 계파내에서 영향력도 높은 리더였던지라, 이후로는 더이상 대표팀에서 큰 구설수에 휘말리지는 않았다.
반면 이강인은 대표팀에서 아직은 막내급에 가깝다. 이강인의 하극상 의혹을 다른 선수들에 비유하자면, 이천수가 홍명보에게, 손흥민이 박지성에게 말대꾸를 하고 달려드는 장면을 상상할수 있을까. 10년 가까운 대선배이자 그것도 대표팀의 주장에게 유망주가 항명을 하는 장면은, 한국과 선후배 문화가 다른 유럽이나 남미에서라도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강인의 중징계나 대표팀 퇴출, 병역혜택 박탈같은 극단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낮다. 더구나 이강인 본인이 민감한 폭행 등에서는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미 사실로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과와 자숙의 과정이 필요해보인다. 축구협회도 한동안 이강인을 대표팀에서 쓰지못하는 손해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태극마크의 자격에 걸맞는 품위와 기강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이강인 개인의 미숙한 인성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아니면 대표팀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인지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대표팀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국내파와 유럽파간의 파벌설, 신구 세대간의 불화설 등이 종종 거론된바 있지만 뚜렷하게 그 실체가 알려진 적은 없었다. 최근 월드컵 16강 등 대표팀의 호성적에 가려지면서 부정적인 이슈들이 가려진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국축구가 유럽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선수 개개인의 강한 개성과 자기주장을 드러내는 시대가 되면서 대표팀도 과거같은 끈끈한 '원팀' 문화와는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굳이 이강인이나 손흥민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한번쯤은 터질 수 있는 문제였다는 점에서, 차라리 이번 기회에 공론화를 통하여 대표팀의 현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수도 있다.
또한 이번 선수단 내분 사태로 인하여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강인의 '실제 성격'에 관한 과거 행적들도 재조명받고 있다. 이강인은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거침없는 언행으로도 유명했다. 친한 선배에게 경기중 정색하며 짜증을 내거나 욕설이 섞인 막말을 했다는 일화, 당돌한 성격 때문에 선배들에게 '막내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일화 등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동안 이강인을 지지하는 팬들과 언론은 이를 '자기 주장이 강한 신세대다운 솔직함' '유럽에서 성장하면서 벌어진 문화차이'등으로 포장해왔다. 이강인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거나 그를 기용하지않는 감독들에 대해서는 마치 이강인에게 부당한 차별을 가하는 존재처럼 왜곡되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축구를 잘하고 스타 선수라고 해서 일반적인 상식과 예의에서 벗어난 행동까지 용납되고 미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오히려 부작용이 훨씬 크다. 사람은 누구나 결점이 있지만, 그 결점을 교훈삼아 자신을 성찰하고 더 성숙하려는 의지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이강인보다 더 유럽에서 인정받은 손흥민이나 박지성, 차범근같은 대선배들이 팬들에게 레전드로 존중받는 또다른 이유는, 축구실력만큼이나 훌륭한 자기관리와 겸손한 태도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이강인이 이번 사태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어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을지, 아니면 '문제아'라는 낙인만 새긴 채 돌이킬수 없는 추락의 시작이 될지는, 모두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팬들도 진실이 정확히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강인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이나 감싸기를 모두 자제하고 잠시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다.